백년 단위, 천년 단위로 시간의 흐름을
그려가며 착수되는 오중탑 대수리

2024년 5월 촬영

날렵하게 뻗은 처마의 지붕과 무게감 있는 나무의 품격. 나라를 방문한 관광객들이 아득히 높은 꼭대기를 올려다보며 여행의 추억으로 사진을 찍어 온 고후쿠지의 오중탑(국보). 높이 약 50미터, 국내에 현존하는 목조탑으로서는 같은 국보인 교토의 도지(높이 약 55미터) 사찰의 오중탑에 이어 두번째 높이를 자랑한다. 현재도 나라현 내에서는 가장 높은 건물이다. 창건은 나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전화와 낙뢰 등으로 소실과 재건을 몇 차례 반복해 왔다. 현존하는 탑은 1426년 무로마치 시대에 세워진 6대째 탑. 그 후 약 600년간 태풍과 지진 등의 천재지변, 불교배척 정책과 같은 시대의 변화를 몇 차례나 이겨내며 옛 풍경을 지금에 전하고 있다. 사람들의 추억과 기원이 축적된 귀중한 불탑, 옛 도읍의 아름다운 심볼이 1901년 이래 대규모 보존수리 공사에 들어갔다. 즉 이전 수리는 메이지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대수리인 것이다.

목조건축은 정기적인 보수가 필수다. 2020년 문화재 건조물 보존과 수리를 하는 나라현 문화재보존사무소의 조사를 통해 오중탑은 기와의 기울기와 파손 등이 발견되었다. 사찰과 문화청, 전문가로 이루어진 수리전문위원회의 조언을 받아 차세대에 적절히 계승해 가기 위한 수리방침이 결정. 기와지붕의 전면 교체, 목조부의 수리, 벗겨진 회칠벽을 수리하는 외에도 기둥축의 상태를 조사하는 등 꼼꼼한 계획 작성과 다양한 보강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첫 층 네 모퉁이의 기둥 위에 있는 ‘대두’라고 불리는 부자재의 변형도 발견되어 당초에 상정했던 것보다 대규모 수리가 될 듯하다.


25년 3월에는 비바람으로부터 지키며 작업을 추진하기 위한 발판 ‘스야네(공사용 가건물)’의 설치가 완료되어 수리가 본격 시동. 철골조 높이 약 60미터의 울타리로 탑은 완전히 뒤덮혔다. 랜드마크를 잠시 볼 수 없는 것은 좀 아쉽지만 수리를 위한 조사를 통해 새로운 학술적 발견이 있기도 기대해 본다. 변칙적인 상황이기에 오히려 문화재 계승에 대해 생각해 보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이다.

지난 번 수리 시에 새로 이은 기와. 무로마치 시대의 연호가 새겨진 기와도 있다.

2025년 8월 촬영

차세대로 전달하기 위한 대수리

"오중탑은 불교의 개조인 석가모니의 유골(불사리)을 넣기 위해 세워진 불탑. 석가모니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이 높이라 멀리서도 눈에 띄어 도읍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바라볼 수 있었다. 즉 본 사람에게 자비에 감싸인 평온함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당시의 건축기술과 문화도, 의식수준의 깊이를 전달해 주는 중요한 건조물.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와 찬동, 협력을 받아가며 무사히 수리를 끝내고 싶다" 고 말하는 것은 고후쿠지의 주지승 모리야 에이슌(75).

경내에는 기둥을 둘러싸며 약사삼존상, 석가삼존상, 아미타삼존상, 미륵삼존상이 서로 등을 맞대고 안치된다.(2022년 10월 촬영)

실로 약 120년 만에 ‘레이와의 대수리’ 시기에 직면한 마음가짐을 "우연의 일치라고는 하나 ‘무사히 다음 세대에 전달해야 한다’는 긴장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수한 인연에 의해 지금의 탑이 존재하는 것이기에" 라고 심오한 표정을 짓는다. 공사상황의 일반공개와 심포지움도 개최되어 가을에는 도쿄 국립박물관에서 특별전 "운경 기원의 공간-고후쿠지 호쿠엔도" 등도 예정. 다양한 행사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갈 생각이다. 또한, 고후쿠지와 일본문화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투어와 체험도 실시되고 있다.

역사를 말해주는 증인으로서의 오중탑

일본 최초의 본격적인 도성이었던 후지와라쿄에서 헤조쿄로 천도한 것은 710년. 법령국가로서의 체계가 완성되어 중국대륙식 궁전과 사원이 다수 건조되고 인도, 페르시아, 아라비아 등의 문화도 도입되어 국제색 풍부한 덴표문화가 꽃 피었던 시대—이 무렵 고후쿠지는 나라에 건립되었다. 도읍을 물들이는 화려한 건축은 권력자의 권위를 내외에 알리는 신호. 고후쿠지는 유력 귀족 후지와라씨의 시조인 후지와라 가마타리와 그 아들 헤조쿄 천도에 진력했던 후지와라 후히토와 연고 깊은 사원으로서 오중탑은 후히토의 딸 고묘황후가 발원하여 730년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진다.

"문화유산은 미술품으로서의 매력뿐 아니라 역사를 말해주는 증인. 오중탑이 가진 시대적 배경, 당시 장인들의 기술, 사원의 환경과 종교적 의미, 이러한 것 모두가 담긴 존재" 라고 말하는 것은 전문위원회의 멤버인 운노 사토시 도쿄대학 교수(일본건축사). "고후쿠지는 몇 차례 소실되어 재건되었지만 그때마다 당시의 기술을 살려 개량되면서도 항상 나라시대의 양식을 지켜가며 역사를 축적해 왔다. 이 전통과 전례를 답습하려는 자세는 세계의 역사적 건축을 보더라도 보기드문 특징입니다. 또한, 오중탑은 중세 재건 이래 몇 차례 수리가 이루어졌으나 대대적인 목재 교체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이번 수리 원칙에 있어서도 문제가 없는 부분은 온존시켜 원래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문화재는 재수리가 안된다. 졸속하게 진행시켜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조사하여 현재의 방침이 옳은가를 항상 확인해 갈 필요가 있다" 고 지속적인 분석과 유연한 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용되는 목재의 종류, 산지와 입수경로 등을 조사함으로써 "당시의 유통상황과 삼림환경 등을 알 수 있는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는 기대도 건다.

2023년 5월 촬영

백년 단위, 천년 단위의 스케줄

수리완료 시기는 현재 2034년 3월을 예정. 우미노 교수는 "상당히 오랜 기간이 걸린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견뎌온 오중탑이나 고후쿠지의 역사를 생각하면 불과 몇 년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아가 나라의 역사, 일본의 역사라는 천년 단위의 스케줄로 바라보면 저희들의 일은 불과 한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축적이 문화재를 미래로 전달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지금 해야할 것과 다음 세대에게 맡길 것. 이런 분별도 중요합니다" 라고 말한다.


고후쿠지의 모리야 주지도 "제행무상, 이 세상에 그대로 머무는 것은 없습니다. 저도 연령이 연령인지라 ‘마지막까지 지켜볼 수 있을까?’라는 마음과 ‘끝까지 해내야 한다’는 두가지 마음이 공존하여 믿음직한 젊은 세대들에게 어떻게든 따라가려고 합니다(웃음). 다음 대수리는 100년 후, 200년 후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이어질 수 있는 것을 해내자 라는 마음입니다" 라고 잔잔히 말한다.

2025년 6월 촬영

한사람의 인생 여정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100년 단위, 1000년 단위의 시간의 흐름을 그려가며 착수하는 오중탑 대수리. 새삼 생각해 보면 수많은 선인들이 수리를 통해 미래로 전달해 준 덕분에 지금 우리는 덴표시대의 풍경과 중세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장대한 로망을 미래로 전달하는 프로젝트가 지금 바로 나라에서 시동되었다.

Japan Cultural Expo 2.0

Japan Arts Council

Agency for Cultural Affairs, Government of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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